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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힘내라는 말이 가슴을 찌른다. 


취업준비 기간,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건 역시 인맥이 아닐까 싶다.

아무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상처 없이 끊어지는 인연이 있더라. 


취업준비생은 왜 인맥마저 끊길까?



1. 자괴감


그 첫 번째, 자괴감이다. 백수라는 자괴감. 빠른 친구들은 벌써 1년 차, 2년 차, 승진 이야기가 나오는 데 아직 나는 '사회'라는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빨리 취업해서 후배들 밥도 사주면서 선배 노릇도 하고 싶고 친구들이랑 근교에 여행이라도 갔다 오고 싶은데 돈을 벌지 않는다는 그 간단한 이유가 취업준비생을 한없이 밑으로 끌어당긴다. 


땅 밑으로 나를 끌어당긴 자괴감은 놔줄 생각이 없고, 도저히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땅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데 설상가상 빛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언제 위로 올라갈지도 햇빛은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태. 


힘든데, 힘들어. 힘들다는 말도 한 두 번. 같은 취준생인 친구들은 말할 것 없고,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힘들다를 연발하는 데 내가 그 앞에서 힘들다는 말을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그렇게 또 혼자 우물로 들어간다. 자괴감을 껴안고 말이다. 



2. 돈 없음


돈을 안 버니까 용돈을 받아야 하는 데 이미 졸업한 상황이라 부모님께 더 손 벌리긴 싫고, 그렇다고 안 벌리자니 생활이 쪼들리고. 언제 면접을 볼지 모르기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면접날이면 결근을 해야 하는 상황. 보통 면접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정해져 있더라도 내가 서류에서 합격할 지 불합격할지 모르니까 스케줄을 함부로 잡을 수 없다. 

토익, 자격증, 교통비, 식비 등등 들어가는 돈은 여전히 많은데 결론은 돈이 없다. 


친구들 만나면,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노래방이라도 가는 데 친구들은 직장인. 그래 나는 돈 없는 백수.

돈 많고 스트레스 많은 직장인은 스트레스를 먹는 거로 푼다. (내 친구들은 여자들이니까) 

TV에 나오는 비싼 음식, 맛있는 음식, 한 메뉴에 2만 원 안팎으로 하는 음식을 먹고 있자니 드는 건 돈 생각뿐. 나 이런 거 먹을 돈 없는데...


"ㅇㅇ야 우리 TV에 나온 ㅁㅁㅁ 갈 건데 같이 갈래?"

"... (돈이 얼마지? 검색..... 헐 개 비싸) ... 아니야 너희끼리 가서 맛있게 먹고 와 ^^"



3. 미안함


취준 1년 차, "넌 잘 될 거야 힘내!" / "응 고마워! 꼭 붙어서 맛있는 거 사줄게"

취준 2년 차, "잘 될거야 힘내!"/ "응 고마워! 나중에 연락하자"

취준 3년 차, "힘내..." / "응..."


힘내라는 말도 한 두 번이지. 수백 번 들어보면 오히려 힘이 빠지는 것 같다. 

힘내라는 데 힘 안낼 수도 없고, 억지로 억지로 웃고는 있는데 친구들이랑 있으면 그 분위기 어찌할 거야

봄이면 꽃놀이, 여름이면 계곡, 휴일에는 여행, 남친 이야기 등등 신나게 자기들 재미있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 혼자 우울 구름이 위에 있는 느낌.

감추려 감추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친구들은 내 눈치를 보게 된다. 


"너도 합격하면 많이 놀러 다닐거야. 힘내"

"지금이 좋을 때야.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사실, 우울해서 어디 갈 마음조차 들지 않음) 


내가 빠지면, 내 눈치 안 보고 편히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미안해 너희끼리 봐 ^^ 난 못 갈 것 같아 (그러고 집에서 우울 열매 먹고 있음)



4. 대화 단절


취준생의 대화 주제 - 자소서, 이력서, 스펙, ㅇㅇ 기업 채용공고 등등

사회인 친구들의 대화 주제 - 월급, 연말정산, 연차, 남친, 결혼, 연휴 등등


대화가 섞이질 않는다. 나는 연말정산 모르는데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너희도 자소서 이야기 지겹겠다.

섞이지 않는 두 대화 속에 찾아오는 침묵 속에서 차라리 만나지 말걸 하는 생각이 자꾸 커진다. 



5. 시간 없음


백수라는 게 그냥 노는 게 아니다. 엄마 저 그냥 놀고 있지 않아요!

잡코리아, 사람인, 인크루트 3개만 돌면서 공고 찾아보면 3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마음에 드는 공고라도 있으면 자기소개서도 써야 한다. 

자소설, 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소개서가 소개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소설!


본인이 학교생활에 있어 창의력을 발휘했던 순간은?

1) 창의력을 발휘하게 된 계기

2) 진행 과정

3)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서술하시오.


없어요. 창의력을 발휘했던 경험...

그래도 써야 하니까 기억나지도 않는 1학년 때 팀플 수업, 방학 때 했던 공모전 준비를 생각해본다. 

이러저러해서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1이라는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1이라는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평소 관찰력을 기르고 정리하는 습관을 길렀다. 

결론적으로 성공/실패해서 차후 팀 프로젝트, 학교생활에 창의적인 사람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문과 거짓말이 존재한다. 

1. 난 창의적인 생각을 한 적 없다. 양보하고 양보해서 창의적인 생각이라고 적자.

2. 그게 정말 창의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다. 

3.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리려고 해서 떠올린 게 아니라 그냥 그 당시 그게 유행했었다. 

4. 차후,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나? 프로젝트를 맡으면 하기 싫다 연발하면서 어쩔 수 없이 했을 뿐..



쓰려고 했던 게 이게 아닌데, 무튼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언제 면접이 잡힐지도 모르겠고, 내 스케줄을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다.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아도 다음날 면접이 있으면 면접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해서 취소된 약속이 몇 개... 


약속을 취소할 바에는 애초 안 잡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이 난다.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취준생의 인맥. 

우리는 이 과정에서 '혼자' 버티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내 인맥이 그렇게 끈끈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내 곁에 남아있는 수많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3년간의 취준생활 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피하기 바빴던 나에게 꾸준히 연락해주었고, 힘내라 응원해주었고

힘내라는 말에도 얼굴이 피지 않을 땐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 주었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힘들어 보였기에 오히려 조금 더 기대주었으면 했다고 한다. 


사실,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취준생 자신일 것이다. 내 인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연락해야 하는데 만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친구 생일인데 등등

"취준기간 동안 인맥을 포기하지 말자!"는 말은 못한다. 나도 못했으니까.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이참에 얕은 인맥 정리한다고. 결국, 남는 사람들이 정말 네 사람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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