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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하며,

어제 포스팅했던 퇴사메일은 '좋은 마음'으로 썼던 글.

2017/12/11 - [신입사원] - 퇴사 메일

회사에 남아있을 사람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움을 가득담아 썼던 글.

 

지금 남기는 글은 정말 악에 받친 글이다. 뒤통수를 미친듯이 후려맞고, 말도 웃음도 잃었던 때 나는 자리에 앉아서 이 글을 썼다.

언젠가 퇴사할 때 남기고 가야지. 엿처먹어라 하고 가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남기지 못했다.

 

첫번째, 그럼에도 바뀌지 않을 걸 아니까.

그들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욕만 할 것을 아니까.

(좋게 메일을 남기고 온 날, 퇴사의 원인, 미친듯이 뒤통수를 후려쳤던 사장에게 존경한다는 내용의 문자와

기프티콘 선물이 온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감정적인 사람인지 추측할 수 있다.) 

 

두번째, 남아있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소중하니까.

글을 남기고 간 뒤의 파장을 알고 있었다. 나와 친했던 직장동료들이 엄청나게 휘둘렸을 것이다.

걔가 이런 글을 남기고 갈 동안 너네는 뭐했냐며 쥐잡듯이 잡았을 것이다.  

 

세번째, 망해버려라.

한 해에 퇴사자 두자리 수, 왜 퇴사자가 그렇게 많은 지 평생 알지 못하고 망해버려라는 생각.

 

몇년 전 유행했던 '삼성을 떠나며' 삼성 퇴사자가 남긴 글을 참고하고 써서 비슷한 느낌이 난다.

내부 고발?용이라 문체를 비슷하게 가져다 썼다(악에 받친 이유는 다르게 썼지만).

-

2년을 남짓 채우고, 함께여서 행복하다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말하던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근거 없는 소문은 왜 그렇게 많은지,

친하다는 이유로 충분히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는 동료와 왜 함께 일할 수 없는지.

감정에 따라 잘 할 수 없는 업무를 맡게 되고, 잘 할 수 있는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게 되는지.

업무 분장에 따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의사 한 번 물을 수 없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퇴사하는 동안 단 한번도 퇴사 이유를 확인하고, 개선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이런 질문조차 왜 회사에서는 의미가 없는지.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재량적 책임.

기업의 4가지 책임 중 윤리적 책임은 비단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 봉사 등 CSR 사회공헌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고용 촉진, 직원 복리후생 증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달의 민족 등 직원이 고객이 될 수 있는 서비스 업계에서는 내부 직원을 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입니다.

기업 복지는 직원의 사기 진작, 소속감, 연대의식을 강화하고 노동생산성 향상을 가져와

기업 이윤 창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갖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픈 와중에 1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급여가 깎인다는 사실에

시간에 맞춰 회사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면서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연휴에 맞춰 여행 가자는 친구들에게 출근해야 한다는 말을 건네며 부러움과 함께 애사심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산에 한계가 있으니 주말에 하는 행사를 기획하면서 참여해준 동료에게 지원을 해줄 수 없었고, 미안했고, 업무에 망설임이 많아졌습니다.

여긴 원래 그러니까. 라며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날들과

임시, 대체 공휴일 연락하기 조차 미안한 마음을 숨기고 거래처에 연락해 갑질 아닌 갑질을 했던 자신과

쉬는 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던 회사를 돌아보면서 절망했습니다.



기계도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봉사하면서 대가를 바라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봉사하는 마음도 몸이 힘들지 않아야 생깁니다.

금전적인, 시간적인 지원이 아니더라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애사심과 충성심이 생깁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기에 시간 외 업무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는 직원을 생각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입사했을 때, 사무실이 떠나가라 웃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에 불만을 표현한 적도 많았습니다.

열정 하나만 믿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1년 만에 이 모든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시키는 일만했고, 불만을 삼켰습니다.

KPI 측정 불가, 고객 데이터 측정 불가 그에 따른 전략 수립 불가.

아무것도 없는 진흙에서 진주를 찾는 기분이 쉴 새 없이 밀려왔고, 도구 없이 맨 손으로 진흙을 파다 보니 의지도 열정도 사라졌습니다.



[부하직원이 말하지 않는 진실]이라는 책 에는 직원들이 원하는 4가지 욕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신뢰 관계 형성의 욕구
직원들은 서로 이해해주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신뢰적인 관계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둘째,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윗사람의 인정을 받으면 조직 생활의 만족도가 두 배 이상 증가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업무 몰입도가 백분의 일로 떨어진다고 한다.

셋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욕구.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에는 집중하기도 어렵고 오래 견디기도 어렵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대는 오히려 주변에서 이러쿵 저러쿵하는 소리가 모두 간섭과도 같다.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잘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가장 잘 몰입할 수 있다.

넷째, 성장,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조직에서 승진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인만의 전문성을 성장,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다.


회사는 네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자부심 있게 말할 수 있는지요.

직원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요. 임원과 직원은 각자 다른 자리에서 같은 회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네 가지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회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무엇을 할 예정인가요.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생활할 수 있어서 즐거웠던 회사입니다.

현재의 변화가 미래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믿기에, 현재의 나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 사실을 알기에,

현재라는 유일한 순간을 믿기에. 즐거웠던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10년 뒤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저에게 조금만 더 버텼으면 잘 되었을텐데. 라고 말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훗날 제가 후회할 수 있도록 남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바꿔나갈 수 있는 환경을 부탁드립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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